- 18-1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1392 사대(명나라) 교린(여진,일본,유구:오키나와)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과 교류한다. 조선 전기 외교정책) →
<명나라>
·최영(요동 지역을 차지하자고 주장한 장군) : (요동 정벌)
·정도전 : (요동 정벌)
·태종-사대 시스템이 만들어져서 쭉 이어짐 : 공무역 시스템. 실리에 입각한 모습들.
(우리→명나라 조공 / 명나라→우리 2배 되는 걸 내림)
<여진>
-강경책 : 4군 6진 (4군:중국 경계면/ 6진:러시아 경계면) → 사민 정책(백성을 이사시키는 정책), 토관제(토착민을 관리로 앉히는 것)
4군→최윤덕, 6진→김종서
-온건책 : 북 평관(여진족 사신 맞이하는 곳. 한양 / 접대), 무역소(원하고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게 함 /교류)
<일본>→
·강경책 : 쓰시마△ (쓰시마정벌 :이종무)
·온건책 : 3포 개항(부산포-부산, 제포-창원, 염호-울산)
→계해약조(3포 개항과 관련된 조약)
이 모든 것들이 ★★세종★★이 왕 때 이루어지고 있다. 여진족에 대한 접대는 태종 때부터 이루어짐. but, 이름을 바꾼 건 세종 때부터이기 때문에 세종과 관련이 있음.
- 18-2 임진왜란
16세기
→3포 왜란(중종 때)
비변사 (임시기능) : 변방 지역(여진, 일본)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는 기관
→을묘왜변(명종 때)
비변사 (상설기구화) : 비변사를 늘 운영시키도록 힘을 더 실어줌.
1592년
·동래성전투(송상현 장군 / 부산)
·탄금대 전투(신립 장군 / 충주)
두 전투 모두 패배 → 선조는 의주로 계속 도망감 (개성-평양-의주)
·한산도대첩(이순신)
·진주대첩(김시민)
·평양성 탈환(조·명 연합군에 의해서) (조·명 연합군 : 의주로 갔던 선조가 명나라에 SOS를 친 것)
·북관대첩(정문부가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이끎) - (의병 : 경상도-홍의 장군 곽재우 / 전라도 -고경명 / 충청도-조헌 )
·행주대첩(권율 장군)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임진왜란 3대첩
→임진왜란
중앙군 : 5위 체제(의무병)
지방군 : 영진군 체제
비변사의 권한이 강력해짐
[임진왜란 휴전기가 들어가면서 바뀜]
변화의 과정을 주도한 인물 : 유성룡(징비록) → 훈련도감
→정유재란
중앙군 : 훈련도감(5군영의 출발점) : 직업군인
ㄴ포수(총), 사수(활), 살수(창) [삼수병]
지방군 : 속오군 (양반~노비 전부 집합) But, 양반은 거의 나가지 않음.
임진왜란 때 비변사의 권한이 강력해지면서 → 의정부 6조 시스템 무너짐.
명량대첩(울돌목) - 노량해전(이순신 장군 전사)
이 과정에서 명나라는 조·명 연합을 해주는 과정에서 쇠퇴함 /
만주 쪽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여진족의 나라 : 후금이라는 나라는 성장함 /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에도막부가 들어섬.도자기 산업이 세계적인 모습으로 발달함. 성리학 발달)
- 18-3 병자호란
→ 광해군
·중립 외교 (강홍립 투항 : 후금에 투항)
→광해군은 자기 동생인 영창대군을 증살(쪄 죽임). 배다른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비시킴.
·대동법 시행(많이 가진 사람은 세금을 더 많이 내라.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시행)
·동의보감 (허준) : 백성들을 위해서 허준을 통해 간행함
→기유약조(일본과 왜란으로 외교가 끊긴 걸 광해군 때 다시 관계를 회복함)
국교 재개(일본과의 교류를 다시 갖겠다)
→ 인조반정(영창대군 증살, 인목대비 폐비로 인해 탄핵 사유로 보아, 광해군 추출)
·서인당 : 광해군을 쫓아냈던 집권 세력
→ 친명 배금(명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오랑캐 후금은 배척하자)
↑이괄의 난 (논공행상 불만, 반정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이괄이 중심이 돼서 인조를 흔들어 놓음 → 인조가 공주까지 피신 감)
→통신사 재파견
→정묘호란(후금이 쳐들어옴)
→강화도 피난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 감)
→형제 관계 (후금이 조선에 형제 관계를 제안하고 끝남)
→병자호란(청 - 후금이 청으로 나라 이름을 바꿈)
→남한산성으로 피난(최명길:청과 화의해 전쟁을 멈추고 나라를 보존해야 한다. vs 김상헌 :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
(강화도는 이미 청이 막아두어 남한산성으로 피난 감)
→삼전도 항복(청이 조선에 왕과 신하의 관계를 제안함)
임진왜란, 병자호란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이 보임.
※
→ 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었고
→ 는 일본과의 왜란, 외교관계의 흐름을 나타냄
이번 강좌에서는 전쟁에 대해서 많이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많이 바뀌었다"라는 말이었는데병자호란에서 당시의 시선에서는 빠르게 수습하는 최명길의 의견이 채택되었지만, 이후에는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의 의견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그 선택을 한다면 다른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안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예전에는 나도 '아 끝까지 싸우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하지만 내가 그 시대에 살던 백성이었다면 최명길의 의견을 선택했을 것 같다.대의를 위해 소의 희생은 당연시 되어도 무방하다 라는 말은 정말 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은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는 조선 전기 조직에 대해 작성하였고, 오늘은 조선 전기 (외교)에 대해 포스팅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조선 전기 경제, 사회에 대해 작성하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최태성 큰 별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토대로 정리되었으며, 제가 복습할 때 강의 재 수강 없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노트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조선 전기 (경제,사회)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역사를 공부하시는 많은 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학 (Korean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조선 전기 (문화2) (0) | 2023.02.09 |
---|---|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조선 전기 (문화1) (0) | 2023.02.08 |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조선 전기(경제, 사회) (0) | 2023.02.07 |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 조선 전기 (조직) (1) | 2023.02.03 |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 조선 전기 (정치) (0) | 2023.0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