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1 광복
<국외> | <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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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 : 독립 약속 그 당시 식민지였던 나라는 많았지만, 카이로 국제회의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독립을 약속받음. 이유는 우리나라는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계속 알렸기 때문에 코리아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독립 약속을 명문화됨. · 얄타 : 소련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 |
조선건국동맹(여운형) | 대한민국 임시정부(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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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광복과 동시에 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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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 소련 |
38선 | ↓ 남 -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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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 |
조선건국동맹(여운형) | 대한민국 임시정부(김구) |
↓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복되자마자 먼저 해야 할 일? · 치안(일본이 갑자기 폐망하면서 권력이 공백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약탈, 폭력, 강도 등.. 무정부 상황이기 때문) · 좌우합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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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공화국(미국이 들어와서 어떠한 요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나라를 선포함) │ 인민 위원회(지방)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일체 미군 정부 이외의 모든 행정조직은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조선인민공화국, 인민 위원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함.
맥아더 장군이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을 위해서 일했던 공무원들,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건들지 말라고 함.
일제강점기가 끝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 = 정의를 세우는 것.
일제에 빌붙어서 성장했던 세력들을 벌하는 것. 그러나 미군정은 빨리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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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 ||
트루먼 독트린 선언 (냉전 : 소련 중심 나라 ↔ 미국 중심 나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자유와 독립의 유지를 위한 경제 원조를 제공한다고 선언한 것. 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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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미, 소, 영국) · 임시정부 수립(조선인들이 운영하는 임시정부 수립하겠다는 게 논의됨.) · 신탁 통치(+중국) (임시정부 수립하는 대신 신탁하는 나라들이 갖고 있겠다는 것. 신탁 통치국가에는 중국이 더 추가됨) · 미·소 공동위원회 |
→ 1946년 1차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소련 대립 이유? 1차 미·소 공동위원회에 참가하는 단체의 자격을 어떻게 둬야 하느냐. 참가 자격 · 소련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지지하는 세력만 들어와라, 부정하는 세력이 들어오는 게 들어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 미국 : 자유민주주의 국가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소련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지지 세력 : 좌익 · 미국 : 우익 단체가 많고 인원수도 많으니 미국의 입장은 더욱더 수월해짐. → 서로의 이익이 충돌함) ↓ 휴회 |
→ 2차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소련 대립 이유? 변한 게 하나도 없음. 참가 자격 문제로 부딪힘. ↓ 완전히 결렬됨. (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미국이 이 문제를 UN으로 넘겨버리면서 이 문제가 이관됨) |
<국내> | ||
임시정부수립 - 좌 ↔ 신탁통치 - 우 · 지지 · 반대 ↓ ↓ 박헌영 이승만, 김구 (신탁통치의 이야기만 듣고 좌,우 모두 반대했으나, 좌파는 임시정부 수립에 방범을 찍고 찬성의 입장을 보이고, 우익 세력은 신탁통치에 집중해 어떤 경우도 신탁통치는 말이 안 된다고 하며 결사반대함. 이에 따라 좌우의 대립이 엄청나게 커짐. 이 씨앗이 나중에 전쟁으로까지 연결이 됨) |
↓ → 이승만 정읍 발언 : 남한이라도 정부를 빨리 수립해서 북쪽에 있는 소련을 격퇴 시키자는 주장을 함. (이에따라 분단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화 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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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중도 좌), 김규식(중도 우) | → 좌우합작운동 (합리적인 운동 / 초기 : 미군정 지지) - 7원칙 : 미·소 공동위원회 빨리 열자. 친일파들을 처단하자.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좌우합작에 박헌영, 이승만, 김구가 참여하지 않다 보니 힘을 잃게 되면서 미군정도 지지를 철회하고, 여운형까지 암살당하면서 힘을 잃게 됨. 좌·우 합작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게 됨) |
좌, 우 대립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광복되자마자 처단해야 할 친일파들이 맥아더 포고문에 의해서 살아나고, 좌우 대립 속에서 우익 세력으로 스며들면서 좌익세력을 때려잡는 반공 투사로 변신을 시도함.
박헌영 : 완전 좌측 / 이승만, 김구 : 완전 우측 but, 여운형과 김규식은 중도 좌, 우였음.
- 38-2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외> | |||
↓ 48년 | |||
UN 총회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 권고함 |
→ UN 소총회 가능 지역만이라도 총선거 실시 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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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 |||
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 ↓ 남침 6·25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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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에서 한국 임시위원단이 파견됨 ↓ 소련 거부 - 북측에 못 들어오게 함 (인원이 북측보다 남측이 많기 때문에) |
↓ 5·10 총선거 (국회의원 뽑는 것)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 ↑ 격렬히 반대하는 세력 ① 김구의 읍고 ② 제주 4·3사건(특별법, 총선) ③남북협상 - 김구, 김규식 + 김일성 - 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 |
제헌헌법 대통령을 어떻게 뽑는지? 간접선거(국민이 직접 안 뽑고, 국회에 의해서 대통령을 뽑음. 초대 대통령 이승만) |
대한민국 정부수립 · 반민특위 실패로 돌아감(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 국회 프락치(간첩) 사건 - 공소시효를 축소 · 농지개혁 (토지를 나눠주는 것) |
국회의원 먼저 뽑은 이유? 나라가 운영되려면 법이 있어야 하는데 헌법을 만들려면 입법부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필요함.
그들에 의해서 헌법이 만들어지고, 그 헌법에 의해서 대통령이 선출되고. 그래서 국회의원을 뽑는 5·10 총선거가 먼저 이뤄짐.
① 3000만 동포에게 읍고. 나는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함.
②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좌익세력들을 소탕하고 잡아들이기 위해서 경찰과 군인들이 투입되는데, 제주 지도에다가 선을 긋고 그 선 밑으로 해변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 선 안쪽에는 다 빨갱이다. 라며 민간인들을 죽임. 지금은 이들의 명예 회복이나 보상을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있음. 그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총선이 치러지지 않음.
③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이 김일성을 만나러 직접 북한으로 감.
그러면서 열렸던 회의 :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 이들이 모여서 어떻게든 정부수립은 막자며 회의하는 모습들이 나타남.
친일파,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하는 것은 정의를 세우는 일.
처벌하지 않으면 외세의 침략을 받는 일이 또 일어나게 되면, 벌 받았다는 역사가 없으면 또 외세에 빌붙어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짓을 또 할 수 있기 때문에 벌을 주고 책임을 져야 함. 더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
그래서 반민특위(반민 특별위원회)를 설립하는데, 이승만 정부가 지금은 북한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라며, 협조하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감.
국회 프락치 사건 : 간첩들이 국회에 들어와 있다. 간첩들을 보니 반민특위 위원들임. 공소시효를 축소해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해놓음.
- 38-3 6.25 전쟁
→ 북 - 소련·중국 지원 | 낙동강 방어선(임시수도 → 부산) ↓ 인천상륙작전(장사리-학도병 경북 영덕) ↓ 중국군 개입 ↓ 흥남 철수, 1·4후퇴 ↓ 소련 휴전 제의 ↓ 휴전회담(자유 송환 vs 자동 송환) ↓ 반공포로석방 ↓ 휴전(53, DMZ 형성) ↓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
<6.25 전쟁> → | |
→ 남 - 애치슨 선언(=애치슨 라인) |
애치슨 라인?
미국이 지켜야 할 극동 방위선을 자를 때 3·8 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이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를 빼고 일본 쪽으로 가버림.
그로 인해 김일성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버린 줄 알고 우리나라를 미국으로부터 해방하겠다는 명목하에 남침을 해옴.
흥남 철수 - 무기를 버리고 민간인 싣고 남쪽으로 철수. 때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이야기함.
1·4 후퇴 - 서울을 또 뺏기는데 이후에 올라가면서 서울을 다시 되고 소련에서 휴전을 제의함.
휴전회담 - 이승만 정부 격렬히 저항.
핵심 : 포로 문제 미국-포로들의 의사를 존중(자유) vs 원래 속해있는 소속으로 돌려보내라(자동)
→ 이 회담이 길어지면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되찾기 위해서 전투는 더 첨예해짐
반공포로석방 이슈가 터짐 - 휴전회담에서 타협 중인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은 미국과 협의도 없이 포로들을 풀어줌.
→ 미국이 뭘 원하는지를 이승만에게 묻고 이승만은 2개의 조건을 말함.
전쟁이 끝나도 미국은 남고,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는 조건을 내세웠고 미국은 받는 조건으로 휴전이 성사됨.
DMZ : militarized Zone. D=부정어. 즉, 무장하지 않는 지역. 군사 분계선을 기점으로 해서 위아래 몇 km씩 무장하지 않는다.
오늘은 현대(광복~6.25 전쟁)에 대해 작성하였고, 다음 글에서는 현대(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영화<태극기 휘날리며>와 학도병들의 이야기였던 <포화 속으로>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있으실 때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 포스팅은 최태성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토대로 정리되었으며, 복습할 때 재수강 없이, 노트만 봐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노트입니다.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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